불암산 자락
보고픔에 눈물짓고추우면 추워서 우울하던 날들이 흘러 벌써100일이 지났습니다어떻게 녀석을 맞을까 하는 설레임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었답니다너무 그리움이 사무치고 녀석의 성장이 궁금 하기도 했지요시간은 낮2시20분어머니 노원역 입니다.아니 벌써 왔단말야어디로 갈까요?집 열쇠도 없는데----"그래 그럼 엄마 있는 곳으로 와라""알았습니다"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답니다녀석을 마중가기로 했지요제가 근무 하는 곳이 옮겨진 걸 아마도 녀석이 모를 것두 같고----시간을 맞추어 나갔지요마을버스는 왔는데 녀석은 나타나지를 않더군요조금 더 기다리니 녀석이 글쎄 택시에서 내리는 겁니다.아니 군발이가 뭔돈으로 택시를......(그 소대는 첫 휴가를 나가면 전통이 고참들이 돈을 꿔준다네요녀석은 9만원을 가지고 왔답니다)뚜벅뚜벅 다가오는 녀석의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늠늠한 모습이였습니다.다가가서 얼굴을 부비고 눈물을 흘렸답니다어머니 왜 눈물을?응 너무씩씩한 내 아들이 자랑스러워서.....그렇게 4박5일의 만남은 시작 되었답니다.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를 녀석은 신기하게 바라보고그저 바라보기만해도 좋은 저는 입이 귀에 걸려 내려 올 줄도 몰랐답니다.과연 군생활은 어때을까를 묻기도 하고 그저 부비며 좋아 하는 저였지요그런데 녀석의 본론은 2일후 나타나기 시작했답니다그래 3개월10일동안 못쓴 돈 다 써야지가죽 잠바를 사지를 않나 무슨 군발이가 신발까지 사는지또 신발을 꺽어 신기에 왜 그러냐고 하니그런것두 하고 싶었다나요제가 이해를 하려하고 화가 나는 부분도 참아야 했어요마음이 모질지 못한 녀석이라 늘 걱정이 앞서고는 했는데---가슴에 달린 민정경찰이라나 그런걸로 위안도 되고요참으로 다행인것은 쫄병생활을 GOP에서 한다는 것이 다행이였어요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산다는 그곳에서 하니---그러나 녀석은 그간 즐기지 못했던 자유를 맘껏 즐기며 휴가를 보낸다고 하더니첫날은 가족과함께 하더니 저녁을 먹고 바로 나가더라고요아침에 들어와서는 아빠랑 같이식사를 하겠노라며꼭 일찍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하고는 했지요저녁은 예전 그대로 올빼미 생활로 이어지더라고요입대 하기전 그모습 그대로.........녀석들 친구 몇명이 같이 휴가를 나왔다나요그래도 아버지와 에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쬐끔 아주쬐끔 달라진 것을 보면서약간은 군대물을 먹긴 먹은 모양이다 했죠휴가가 끝나갈 수록 녀석의 얼굴색은 변하기 시작 했습니다일초 일분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깝다고---이 자유를 좀더 누리고 싶다고그런녀석에게 아무말도 못 하고 그저 바라 볼 수는 어떤 대책도 없더라고요휴가가 끝난날 되돌려 보내기 조차 싫었답니다에미가 아니라면 잡고 싶은 심정이였지요,아버지가 연대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무척 무거웠다고합니다.좀더 머므르고 싶은 자유가 끝난다는 서글픔에 녀석의 표정은 심히 우울했다고 전 하더라고요허지만 대한민국 사나이가 가야 하는 길이기에어쩔 수 없이 녀석은 제시간에 들어 갔다고 해요제게 전화한 목소리가 어찌나 아린지 아직도 저는 슬퍼집니다녀석이 무사히 복무에 충실 했으면 하는 기대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