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물고기는물과 싸우지 않고 주객은술과 싸우지
예은박선순
2004. 2. 20. 06:49

싸우지 술과 주객은 않고 물과 물고기는>(君子의 酒酌文化)
1. 술은 남편에 비유되고 술잔은 부인에 해당되므로 술잔은 남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부의 자리에서 한 번 잔을 돌리는 것은 소중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뜻이 있으므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일을 자주 한다는 것은, 情(정)이 過(과)하여 陰節(음절)이 搖動(요동)하는 것이라 君子(군자)는 이를 삼가야 한다.
2. 술을 마실 때에는 남의 빈 잔을 먼저 채우는 것이 인이고, 내가 먼저 잔을 받고 상대에게 따른 후에 병을 상에 놓기 전에 바로잡아서 상대에게 따르는 것은 인을 행함이 민첩한 것으로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다.
3. 잔을 한번에 비우는 것을 明(명)이라 하고 두
번에 비우는 것은 周(주), 세 번에 비우는 것은 進(진)이라 하며, 세 번 이후는 遲(지)라 하고, 아홉 번이 지나도 잔을 비우지 못하면 술을 마신다고 하지 않는다.
4. 술을 마심에 있어 먼저 갖추어야 할 네 가지가 있다.
첫째 : 몸이 건강하지 않은즉 술의 독을 이기기 어렵다.
둘째 : 기분이 평정하지 않은즉, 술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셋째 : 시끄러운 곳.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 좌석이 불안한곳. 햇빛이 직접 닿는 곳.
변화가 많은 곳. 이런 곳에서는 많이 마실 수 없다.
넷째 : 새벽에는 만물이 일어나는 때다. 이때 많이 마신즉 잘 깨지 않는다.
5.천하에 인간이 하는 일이 많건만 술 마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 다음은 여색을 접하는 일이요. 그 다음은 벗을 사귀는 일이요. 그 다음은 학문을 하는
일이다. 酒,色,友,學(주,색,우,학) 이 네 가지는 군자가 힘써(?)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6. 말 안 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일이요,
말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술 또한 이와 같다. 술을 권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할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술을 권함에 있어 먼저 그 사람됨을 살피는 것이다.
7.술에 취해 평상심을 잃는 자는 우는 자는 仁(인)이 없는 자이며, 화내는 자는 義(의)롭지 않는 자이며, 騷亂(소란)한 자는 禮義(예의)가 없는 자이며,
따지는 자는 智慧(지혜)가 없는 자이다.
그런 까닭에 俗人(속인)이 술을 마시면 그 성품이 드러나고, 道人(도인)이 술을 마시면 천하가 평화롭다.
속인은 술을 추하게 마시며, 군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마신다.
8.술자리에서의 음악이란 안주와 같은 뜻이 있고 술 따르는 여자는 그릇의 뜻이 있다.
어떤 사람과 술을 마시느냐 하는 것은 때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술자리는 아무런 뜻이 없이 한가롭게 술만을 즐길 때이다.
9.술자리에는 먼저 귀인이 상석에 앉는데, 우선 편안한 자리를 상석이라 하고, 장소가 평등할 때는 서쪽을 상석으로 한다.
귀인이 동면하고 자리에 앉으면 작인은 좌우와 정면에 앉고 모두 앉으면 즉시, 상석에 있는 술잔에 먼저 채우고 차례로 나머지 잔을 채운다.
이때, 안주가 아직 차려지지 않았어도 술을 마실 수 있으며, 술잔이 비었을 때는 누구라도 즉시 잔을 채운다.
술을 따를 땐 안주를 먹고 있어서는 안되며, 술잔을 받는 사람은 말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술을 받을 때나 따를 때는 술잔을 잡고 있어야 한다.
술잔을 부딪치는 것은 친근함의 표시 이나 군자는 이 일을 자주 하지 않는다.
술잔을 상에서 떼지 않고 술을 받아서는 안되고, 마실 때는 일단 잔을 상에서 들어올리고 멈춰서
사람을 향한 후에 마신다.
술을 마실 때는 잔을 입술에 대고 고개를 뒤로 젖혀서 마시고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 마신 후, 잔은 상에 내려놓지 않고 일단 멈추고 약간 밖으로 기울여 술잔 속을 보이도록 한 후 내려 놓는다.
마실 때, 손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술잔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술은 두 손으로 따르고 두 손으로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술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며, 또 두 손으로 마시는 것은 술을 따라준 사람을 귀히 여긴다는 뜻과 술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잔이 넘어져 술이 조금 쏟아졌을 때는 그대로 두고 모두 쏟아졌으면 즉시 그것을 다시
채워주고 채워준 사람에게 미안함을 표시한다.
술이 안주에 쏟아졌을 때는 그 안주를 먹어도 좋고, 안주가 술에 빠졌을 때는 그 술을 버린다.
그 이유는 술은 천(天)이므로 안주에 쏟아진 것은 허물이 되지 않고, 안주는 지(地)이므로 술에 빠진 것은 地(지)가 요동하여 天(천)을 범한 것이므로 버린다.
또 내가 남에게 술을 따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술을 따르면, 자기 잔을 쳐다보지 않고 따르던 술을 따른 후에 자기 잔을 약간 들어 따라 준 사람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한다.
술의 법도는 그 엄하기가 궁중의 법도와도 같으며 그 속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뜻이
있고 힘을 합한다는 뜻이 있다.
뜻이 있고 힘을 합한다는 뜻이 있옛 선인(仙人)이 말하기를
취중(醉中)의 하루는 평시(平時)의 한 해와도 같다고.
이는 취중(醉中)의 마음에 정(精)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널리 여행(旅行)을 할 때도
그 지방(地方)에 도착(到着)해서는
그 지방(地方)의 술부터 음미(吟味)하는 것이다.
만일,
경치(景致)만 구경하고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그 지방(地方)에 있었다 하리요.
한평생(一平生)을 살면서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世上)에 있었다 하리요.
술을 마신 즉
천하(天下)가 정(情)답고
천하(天下)가 정(情)다운 즉
만상(萬象)이 일어나고
만상(萬象) 중(中)에는
큰 뜻이 있는 것이다.
만일(萬一) 어떤 사람이
천하(天下)에 나서 별 생각(生覺)이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금수(禽獸)와 다르지 않다.
사람은 생각(生覺)이 많으면
뜻이 많고
뜻이 많은즉
그 중(中)에서 도리(道理)를 찾을 수 있다.
군자(君子)의 생(生)에 있어서
술을 마셔 흥(興)이 많다면
이는 천행(天幸)에 크게 참여(參與)하는 것이니
술 마시는 일이 어찌 대사(大事)가 아니리요.
공자(孔子)는 말하였다.
말 안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말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라고…….
술 또한 이와 같다.
술을 권(勸)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勸)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勸)할 사람에게 권(勸)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는 술을 권(勸)함에 있어 먼저
그 사람됨을 살피는 것이다.
작인(酌人)이
술을 받아
한 잔을 마시는 것은 견(見)이라 말하고 이는 예(禮)로서 가(可)하다.
두 잔을 마시는 것은 상(想)이라 말하고 정(情)으로서 가(可)하다.
세 잔을 마시는 것을 좌(坐)라고 말하고 이는 교(交)로서 가(可)하다.
군자(君子)가
서로 보고 앉아 세 잔의 술을 마시면
이는 사귐이 성립(成立)된다.
사람과 사람이 사귐에 있어
천하(天下)에 술만한 것이 있을까?
술이란
인간(人間)이 가진 원한(怨恨)마저도 풀어주는 것으로
취중(醉中)에는 인간(人間)의 마음이 선(善)하다.
혹자(或者)는 말한다.
술을 마시면 각종(各種) 욕심(慾心)이 생긴다.
그러므로 취중(醉中)의 마음은 선(善)하지 않다.
이는 그렇지 않다.
인간(人間)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慾心)은
자연(自然)스러운 감정(感情)이다.
자연(自然)스러운 감정(感情)은 나쁜 마음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남을 불리(不利)케 하는 생각(生覺)이라면
행동(行動)을 삼가면 될 것이다.
또 인간(人間)의 자연(自然)스러운 감정(感情)속에는
욕심(慾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깊게 사랑하고
생각(生覺)하는 것도 있다.
군자(君子)가
술을 마시는 것은
그 뜻이 천지(天地)와 더불어 하나임을 즐기는 데 있다.
즐거워한다는 것은
천명(天命)을 사랑한다는 뜻이 있으므로
술을 들고자 하는 마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비록 속인(俗人)이라 할지라도
술을 마시게 되면 자연(自然)으로 돌아간다.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을 소작(素酌)이라 한다.
둘이 마시는 것은 화작(化酌),
셋이 마시는 것은 한작(閒酌),
넷이 마시는 것은 안작(安酌),
다섯이 마시는 것은 수작(秀酌),
여섯이 마시는 것은 전작(全酌),
일곱이 마시는 것은 등작(登酌),
여덟이 마시는 것은 임작(臨酌),
아홉이 마시는 것은 연작(宴酌)이라 말한다.
술에 취(醉)해 평상심(平常心)을 잃는 자는 신용(信用)이 없는 자(者)이며,
술에 취(醉)해 우는 자는 인(仁)이 없는 자(者)이며,
술에 취(醉)해 화내는 자(者)는 의(義)롭지 않은 자(者)이며,
술에 취(醉)해 소란(騷亂)한 자(者)는 예의(禮意)가 없는 자(者)이며,
술에 취(醉)해 따지는 자(者)는 지혜(智慧)가 없는 자(者)이다.
그런 까닭에
속인(俗人)이 술을 마시면 그 성품(性品)이 드러나고
도인(道人)이 술을 마시면 천하(天下)가 평화(平和)롭다.
속인(俗人)은 술을 추(醜)하게 마시며
군자(君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마신다.
마음이 즐겁고
행동(行動)이 아름다운 것,
이것이 군자(君子)의 취(醉)함이다.
마음이 즐거운 즉, 곧 천(天)을 즐거워 함이요,
행동(行動)이 아름다운 즉, 곧 명(命)을 아는 것이다.
술이 갖는 뜻은
곧 천정(天情)이건만
술 자체(自體)는
인간(人間)이 만든 식품(食品)인 까닭에
상품(上品)이 있고,
하품(下品)이 있다.
대체로
상품(上品)은 약(藥)이 되게 하고
하품(下品)은 독(毒)이 된다.
만일
작인(酌人)이
상품(上品)의 술을 구(求)하지 못한다면
이처럼 괴로운 일이 있을까?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는 술이라는 물건(物件)을 소중(所重)히 한다.
술은
하늘의 고마움과
성인(聖人)의 사랑이 담긴 물건(物件)이다.
작인(酌人)이 이미 상품(上品)의 술을 구(求)했다면
좋은 장소(場所)에서 그것을 마셔야 할 것이다.
천명(天命)은
땅에 깃드는 것이므로
어찌 술 마시는 장소(場所)를 고르지 않을 것인가?
고언(古言)에 이르기를
봉황(鳳凰)은 오동(梧桐)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고…….
상품(上品)의 술을 아무 곳에서나 마신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일까?
술과 장소(場所)는
작인(酌人)이 제일(第一) 먼저 생각(生覺)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안주와 그릇이다.
안주는 술에 뒤따르는 것이고
그릇은 술과 안주를 받들어 주는 것이다.
예로부터
군자(君子)는
안주와 그릇을 잘 선별(選別)하였다.
안주는 기혈(氣血)을 돕고 술 마시는 일을 즐겁게 한다.
그릇이란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므로
아름다운 것을 귀(貴)히 여긴다.
상(傷)한 그릇은 술자리에서는 사용(使用)하지 않는 것이다.
술과 장소(場所),
안주와 그릇,
이 사자(四者)를 작화(酌花)라 하고
이것을 모두 훌륭히 갖추었을 때를 사전(四全)이라 말한다.
술자리에서의
음악(音樂)이란 안주와 같은 뜻이 있고
술 따르는 여자(女子)는 그릇의 뜻이 있다.
어떤 사람과 술을 마시느냐 하는 것은
때에 따라 정(定)해지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술자리는
아무런 뜻이 없이 한가(閑暇)롭게 술만을 즐길 때이다.
일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이
가장 나쁜 술자리이다.
군자(君子)가
즐기기 위해 술을 들기도 하고
일을 위해 술을 들기도 하지만
어느 때라도 법도(法度)를 어기지 않는다.
대저,
술의 법도(法度)는,
그 엄(嚴)하기가 궁중(宮中)의 법도(法度)와도 같으나
그 속에는
모두 사람을 사랑하는 뜻이 있고,
힘을 합(合)한다는 뜻이 있다.
그런 까닭에
학인(學人)이 처음 술을 마시는 법(法)을 배울 때
먼저 그 엄(嚴)한 격(格)을 몸에 익히도록 해야 하며
조용한 상태(狀態)에서 술을 마셔야 한다.
대체로
말이 많고 생각(生覺)이 번거로우면
술의 도리(道理)를 익히지 못하고
취기(醉氣)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술이란
그것을 마셔서 몸에 그 기운(氣運)이 퍼지는 것을
마치 사계절(四季節)이 변화(變化)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처음부터 갑작스레 마셔서는 안되고,
이미 마신 술의 기운(氣運)이 마음에까지 와 닿을 때
다음 잔(盞)을 마시는 것이고
서서히 취(醉)해 가는 것이 좋다.
사계절(四季節)의 운행(運行)은
쉬지 않고 점차(漸次) 흘러가는 것이고
술자리는
그 흐름이 음악(音樂)과 같아서
그 곡(曲)이 끊어지지 않고
바르게 흐르면
몸의 기운(氣運)이 상(傷)하지 않고
흥(興)을 높여서
술을 오래 마실 수 있게 된다.
만일(萬一)
작인(酌人)이 취기(醉氣)의 흐름을 잘 살필 수 있으면
장차(長差) 그 흐름을
제압(制壓)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옛 말에
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음은
물,
그것이 부드럽게 때문이라고…….
취기(醉氣)의 흐름도 이와 같이 부드러운 것이므로,
그것을 제압(制壓)하는 데는 극히 부드러워야 한다.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는다.
군자(君子)가 술을 마시는 법(法)은
물고기가 물에서 노는 것을 본뜬다면 가(可)할 것이다.
물고기는
물의 흐름을 따라야 할 때는 따르고 어떤 때는 힘차게 역행(逆行)한다.
술이란 술이 하자는 대로 해서도 안되고
그 반대(反對)로만 해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에 술 마시는 일처럼 어려운 것은 드물다.
혹자(或者)는 말한다.
술이란
취(醉)하면 그것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므로
취(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는 지극(至極)히 어리석은 말이다.
술이란 취(醉)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고
또한 술을 마시고 취(醉)하지 않으려고 제자리에서 버틴 즉
취기(醉氣)는 파도(波濤)처럼 넘어오고,
마침내 몸과 마음을 상(傷)한다.
이는 어리석은 물고기가 물의 흐름에 대항(對抗)하여
마침내 자신(自身)의 명(命)을 다함과도 같다.
그렇다면 술이란 어떻게 대(對)하여만 하는 것일까?
도인(道人)이 말하기를
취기(醉氣)의 운행(運行)은 여인(女人)의 마음과도 같아서
그 진퇴(進退)를 알 수가 없다고.…….
또 선인(仙人)이 말하기를
취기(醉氣)의 운행(運行)은 미리 정(定)해진 것이 없다.
작인(酌人)의 마음 먹기에 따라
그 공격(攻擊)이 오묘(奧妙)하다고…….
대저,
취기(醉氣)의 운행(運行)은
노자(老子)의 유현(幽玄)과도 같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은
태어난 즉 그 뜻이 있으나
유현(幽玄)은 뜻이 없다.
혼돈(混沌)하고 황홀(恍惚)하다.
취기(醉氣)의 운행(運行)은
그 정(定)해진 방향(方向)이 없다.
아직 결정(決定)되지 않은 상태(狀態),
이것은 노자(老子)의 천하모(天下母)와 같다.
이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주도(主導)를 귀(貴)히 여기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학문(學文)하는 일은
어려움에 부딪쳐 싸우는 것이고
작인(酌人)이
닦는 도리(道理)도
어려움에 부딪쳐 싸우는 것이다.
대체로
큰 이익(利益)이란 큰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이다.
술 마시는 일의 어려움은
예로부터
수많은 도인(道人)이 얘기하였지만
어려움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것은
주도(酒道)뿐만 아니라
일생(一生)을 사는 뜻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 된다.
어려움이란
그것을 쉽게 하는 것도 이로울 수 있으나
때로는
어려움에 부딪쳐 체득(體得)하여야 하는 것이다.
혹자(或者)는 말한다.
술을 마시기 전에
음식(飮食)을 많이 먹어 두어야 한다고…….
이 또한 어리석다.
술의 기운(氣運)이 음식(飮食)에 숨어 있은즉
그 흐름을 더욱 예측(豫測)하기 어렵다.
어려움이란 드러낼수록 쉬운 것이 된다.
또한 어려움이란 부딪쳐서 그것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천도(天道)는 빈 곳으로 흐른다.
물도
빈 곳으로 흘러 낮은 곳에서 안정(安定)한다.
술의 기운도
빈 곳으로 가서 안정(安定)한다.
술을 마시기 전에 음식(飮食)을 먹어서
술의 기운(氣運)을 지연(遲延)시키면 그
힘은 더욱 축적(蓄積)되고,
술의 성품(性品)이 천(天)의 성품(性品)이므로
차 있는 것을 파(破)하고
비어 있는 곳을 이롭게 한다.
술을 마시기 전에 음식(飮食)은
술을 거부(拒否)하게 되고,
취기(醉氣)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하므로
이는 크게 위험(危險)하다.
예로부터
군자(君子)가
첫 잔에 안주를 들지 않는 것도
술의 성품(性品)을 빈 곳에서 드러나게 하자는 뜻이 있는 것이다.
음식(飮食)으로 이를 숨겨 주는 것은
술의 폭성(爆性)을 도와 주는 것이 되고
반드시
몸을 상(傷)한다.
음식(飮食)은 반드시 술에 뒤따르는 것이다.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을 본뜬 것으로
먼저
천의(天意)가 정(定)해지고 다음에 그 기운(氣運)이 오고
마지막에
형질(形質)이 차게 되는 것을 뜻한다.
비어 있는 것은 참으로 위대(偉大)하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계획(計劃)된다.
술잔도 비어 있는 곳에서 큰 뜻이 시작(始作)된다.
따라진 술을 마심으로써
지난 일의 결말(結末)이 되고,
비어진 잔은 새로운 일의 시작(始作)이 된다.
음식(飮食)을 먹지 않고
술자리에 임(臨)해서 먹는 음식(飮食)은
몸에 크게 이롭고 마음도 즐겁다.
몸을 비우고
술과 가까이 친하는 것은
술의 성품(性品)을 접(接)하는 좋은 방법(方法)이 된다.
이는 또한 몸을 크게 활동(活動)하게 하여
백병(百病)을 치료(治療)한다.
만물(萬物)의 이치(理致)는
차 있는 곳에서는 쉬고자 하고,
비어 있는 곳에서 크게 일어나려고 한다.
음식(飮食)을 많이 먹고
술자리에 임(臨)하는 것은 쉬고자 하는 뜻이다.
술자리는 쉬는 곳이 아니고,
빈 곳에서 크게 일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묻건대, 술을 마시기 전에 색(色)을 접(接)하는 것은 어떤가?
답하되
이는 가(可)하다.
방사(房事)는 대체로 정기(精氣)를 소모(消耗)하는 것이므로
몸은 비게 된다.
빈 몸,
이것은 술을 마셔도 가(可)하다.
술을 마신 후(後)에는 술의 기운(氣運)을 지켜야 하므로,
방사(房事)는 극히 해(害)롭다.
술을 마시고
음식(飮食)을 먹는 것은
몸을 보(補)하는 것이므로
이는 가(可)하다.
비고 차는 도리(道理)에 능통(能通)하면
주도(酒道)에도 능통(能通)할 수 있다.
대저,
만물(萬物)의 유전(流轉)은
빈 곳은 채워지고, 찬 곳은 흩어진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아서
빈 마음은 채우고자 하고
채워진 마음은 변화(變化)를 일으킨다.
술을 마심에 있어서도
빈 잔은 채우고,
찬 잔은 마셔서
그것을 비운다.
빈 잔에는 훌륭한 술을 채우면 좋을 것이다.
인간(人間)의 빈 마음에는 무엇을 채울 것인가?
만물(萬物)의 빈 곳에는 무엇이 채워질 것인가?
술잔의 차고 빔,
오!
술의 덕됨이여 !
다.